지난 9월 2일에 방송의 날 축하연이 열렸어.
국회 인사들 정부 관계자들 방송사 종사자들 및 역대 방송인들이 모두 모여 자리를 빛냈지.
예전 뉴스레터에서 다뤘듯이 한국의 독자적인 호출부호(HL)을 부여받고 방송주권을 되찾은 날인 9월 3일 방송의 날을 기념하는 자리였어.
이번 호에서는 '방송의 날'을 비롯하여 ‘방송문화 100년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해.
💬 우리나라가 독립한 게 1945년인데 방송문화 100년은 아직 20년 이상 남은 일 아니냐고?
하지만 독립 이전인 1927년 일제강점기 시기, 국내에는 경성방송국이 설립되었어.
경성방송국은 한반도에서 처음 개국한 방송국으로 초기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함께 사용하여 방송하였지.
문제는 독립 이후 경성방송국이 완전히 정리되고 새롭게 방송국이 개국한 것이 아니라, 방송은 계속 이어지면서 변화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국내 방송문화 역사의 기원에 논쟁점이 생겼어.
우선 8월 15일 해방 이후에도 일본군은 경성방송국을 9월 8일까지 점거했고,
9월 15일이 되어서야 일본인 간부대신 한국인이 인수할 수 있었지.
호출부호 문제도 있는데, ‘JODK’라는 콜사인 대신
해방 이후에는 ‘KBS(This is Seoul korea Key Station of the Korean Broadcasting System)’라는 긴 콜사인을 사용했어.
이미 알고 있다시피 1947년 9월 3일이 되어서야 ‘HL’이라는 호출부호를 할당받았고, 10월 1일부터 방송에서 이 콜사인을 사용하게 되었지.
이처럼 국내 방송문화의 역사의 시작을 논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슈들이 존재하고있고 또 고려되어야 해.
자 그럼 이제 방송문화 역사의 시작을 1927년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독립 이후로 보아야 할지 한번 살펴볼까?
사실 한국방송협회와 KBS는 1987년에 <한국방송 60년사>를,
1997년에는 <한국방송 70년사>를 제작하여 출간한 바 있어.
사실 60년, 70년 자체가 1927년을 방송문화 역사의 기원으로 본 셈이지.
물론 이때에도 일제강점기에 개국한 경성방송국을 국내 방송 역사에 포함시키느냐에 대해 논쟁이 있었어.
이에 <한국방송 60년사>와 <한국방송 70년사>의 서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해.
“이것이 바로 우리 방송이 걸어온 기구한 역사였다. 그러나 ‘우리 방송의 탄생을 일제에 의한 1927년부터가 아니라 광복 이후 1945년으로 보아야 옳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역사는 단절될 수 없다'는 불변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수긍될 수 없는 견해이다.”
“‘우리 방송의 탄생은 일제에 의한 1927년부터가 아니라 광복이후 1945년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얼른 수긍하기가 어렵다. ‘
역사는 단절될 수 없다’는 불변의 원칙을 내세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도 방송기술에 바친 한국인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고, 또 일본인들의 핍박 가운데서도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노력한 우리 방송인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역사의 연속성과 더불어 일제강점기라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방송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1927년을 방송문화 역사의 기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정한 거지.
이밖에도 ‘방송의 날’을 언제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이슈도 있어.
그렇게 1976년까지 10월 2일에 방송의 날 행사를 진행해왔는데, 10월에는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등 여러 국가 행사로 인해 제대로 방송의 날을 기리기 어려웠지.
그 때문에 1977년에는 경성방송국이 개국하여 첫 전파를 내보낸 '2월 16일'을 방송의 날로 기념했어.
그러나 경성방송국이 개국한 2월 16일을 기념하는 것은 일제의 잔재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바로 다음 해인 1978년에는 국제무선통신회의로부터 한국 고유 호출부호 'HL'을 배정받은
'9월 3일'을 방송의 날로 확정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이 날이 방송의 날로서 기념되고 있지.
한국방송협회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BC입니다!